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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3. 오랜 관행이 탐욕을 부른다

입력 : 2016-06-01 04:40:00 수정 : 2016-06-08 11: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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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화가가 한 사람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J씨의 그림 대작(代作) 이야기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 동안 유명화가들도 한 두 명의 조수들에게 작업을 시키고 있다면서 미술전문가들 조차 ‘관행이다, 아니다’로 의견이 갈린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화가들이 제자들에게 그림을 나누어 그리도록 했다고 하니, 대작의 역사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모양이다.

한 변호사는 방송에 출연하여 J씨의 그림을 일종의 팝아트(Pop Art)이며, 앤디 워홀 이후 작가가 개념을 잡고 다른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도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작업의 90%를 남에게 맡기고 마무리와 서명만 한다는 것은 화가로서 자존심 문제가 아닐까 한다. 설사 그림도 분업화 시대에 들어섰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J씨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그의 작품 소재가 독특하고 나이가 느껴지지 않음에 놀랐던 적이 있다. 비슷한 연배인데도 가수로서, 방송인으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그림까지 그린다는 사실에 부러움까지 느꼈다. 그러기에 이번 대작 사태를 보면서 왜 이런 구설수에 올라야 했는지 안타까움이 앞섰다. 화가로서 점점 유명해지고 작품이 고액에 거래되고 하니 혹시 처음 그림을 그릴 때의 초심을 잃은 것은 아닐까.

대작(代作)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대원군 이하응이다. 그는 허울뿐인 왕손으로 곤궁한 시절을 살면서 난초를 그려 억지로 안기다시피해서 먹고 살았다. 나중에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 자신은 대원군이 된 후에는 난초 그림을 구하려 모여드는 사람들을 위해 사람을 시켜 난초를 그리게 하고 자신은 낙관만 찍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원군의 난초 그림은 우선 가짜가 아닌지 의심을 사게 되고 말았다고 한다.

미술계의 문제가 대작만이 아니다. 고 천경자 화백의 위작 논란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지난 1991년 4월 천경자 화백은 ‘미인도’는 자신이 그린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이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측은 진품이 맞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화가가 가짜라고 말하는 데 감정인은 진품이라고 판정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무려 25년 동안이나 위작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작품의 진위 여부를 감정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아는 한 골동품 수집가는 작품의 진위여부를 가려주는 감정인을 고르는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그의 비결은 감정인을 선택하기 전에 꼭 함께 식사를 해보는 것. 식당에서 만나자고 해본다는 것인데, 감정인이 고르는 식당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맛있고 정갈한 음식을 내는 식당을 고르는 사람은 대체로 감식능력이 높고, 맛도 별로이며 깔끔하지 못한 식당에서 만나자고 하는 사람은 감식능력도 별로였다는 것이었다. 음식의 맛을 아는 것과 작품의 가치를 아는 것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그는 보고 있었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적잖은 작품을 소장하게도 되었다. 유명 화가의 작품을 많이 접하다 보니 그림을 보는 눈도 나름대로 생겼다. 언젠가 인사동 화랑의 전시장에 들렸더니 상당히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라는 병풍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10폭 병풍 그림 중 2폭은 아무리 봐도 그 화가의 그림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화랑 관계자에게 2폭은 진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의견을 보이고는 화랑을 나왔는데, 나중에 들으니 결국 그 2폭은 위작으로 밝혀졌다고 해서 잠시 우쭐한 적도 있었다.

내가 J씨의 그림을 보면서 나이를 느끼지 못했던 것도 그런 나의 직관이었을 것이다. 대작은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았어도 서명만은 본인이 직접 하니 처음부터 가짜인 위작(僞作)과는 다르다. J씨는 이번 논란에서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고 일부 작업만 그림자 화가에게 맡겼기에 모두 자신의 창작품이라고 강변하지만 세인의 시선이 그의 편이 아니라서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화가가 그림에 서명을 하는 것은 자신이 그렸다는 표시가 아니라 분신임을 표시하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J씨는 며칠 전 지방 콘서트 무대에 올라가 ‘화투를 오래 만져서 망했다’라는 말로 심정을 표현했다. 처음 붓을 들었을 때의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나 그렇다고 쉬운 방법을 택하는 것은 장인의 정신이 아니다. 이번 대작사태는 화가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심을 잃고 명예욕과 탐욕에 빠지도록 만든 우리 사회의 오랜 ‘관행’이 문제가 아닌가 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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