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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줌마 라라의 일기] 18화. 이것은 아줌마의 세계

입력 : 2016-05-18 04:45:00 수정 : 2016-05-17 18: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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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반’ 시절이 있었다. 노란 유치원 버스에 애들을 실어 보내고 시작된 수다. “우리 집 가서 차 한 잔 할래요?”로 운을 뗀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애들이 유치원에서 ‘가갸거겨’를 배울 때 나는 노랑반에서 아줌마의 신세계에 눈떴다.

노랑반 멤버는 좀 특이했다. 서울대 나와 돈벌이 시원치 않은 남편 만나서 스트레스성 기미를 늘 달고 살던 ‘기미숙’, 길거리 캐스팅될 정도로 한 미모하면서도 의외로 털털한 ‘반전미녀’, 인생의 정답으로 삼고 싶은 ‘왕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넷이었다.

‘반전미녀’는 대학 때라면 결코 어울리지 않았을 우아녀였다. 일제시대로 치면 신문물에 밝은 신여성이었다. 신문지나 깔고 자장면을 먹던 내게 그녀는 ‘세팅’이란 우아한 세계를 알려주었고, 꾸미는 데 젬병이었던 내게 야매문신이니, 라식수술의 신세계로 인도하여 '비포와 애프터‘가 확연한 얼굴로 변모시켰다. 나는 눈에 띄게 촌티를 벗어갔다.

난 보답의 뜻으로 그녀를 ‘베란다 삼겹살 파티’로 즐기는 이색 캠핑의 세계로 안내했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 ‘미쳐봐 댄스파티’를 열어주기도 하였다. 우린 왕년의 전공을 살려 내가 문학을 가르치면 반전미녀가 미술을 가르치는 등 교육 품앗이를 하기도 했다. 난 점점 노랑반에서 한 울타리의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줌마란 한 푼도 허투루 쓸 줄 모르는 궁상의 지극이었다. 노랑반 최고의 에피소드를 들라면 단연 '기미숙의 식탁구입기'이다. 기미숙은 남들 다 가는 헤어숍 대신 미용학원에서 실습용 파마를 할 정도로 살림에 쪼들렸다. 어느 날 ‘선착순 1인 식탁 50% 할인’이라는 전단지 글자가 그녀 눈에 크게 들어왔다. “이번 기회에 꼭 식탁을 바꾸고 말겠어.” 확고한 의지로 반전미녀와 함께 백화점 현장 답사까지 다녀왔더랬다.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주차장에서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최단코스를 발견하였다. 다음 날 아침 열시 백화점 오픈과 동시에 펼쳐진 식탁레이스, 당당히 기미숙 여사가 1등을 거머쥐게 된다. 계약서를 막 쓰고 있는데 헐레벌떡 도착한 한 손님, "에이, 더럽게 일찍 왔네." 그랬다던가? 큭큭. 그날 우린 그 식탁에 둘러 앉아 김치전을 먹으며 당첨을 축하하였다.

반전미녀는 그녀 자체가 네이버 최저가 검색이었다. “80% 이하는 세일도 아니지.”라며 브랜드 패밀리 세일 일정을 꿰고 있었다. 못 건져오면 큰 손해라도 보는 양 새벽같이 줄을 서고 결연한 태도로 쇼핑에 임했더랬다. 부티에 귀티까지 흐르는 그녀가 득템 하나 해보겠다고 먼지구덩이에 머릴 처박고 옷을 고르는 모습이란 어찌나 섹시하던지. 그렇게 궁상떨며 아낀 돈으로 어미들은 애들 밥상에 소고기라도 한 번 더 올릴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노랑반은 물물교환과 공동육아와 품앗이가 있는, 무엇보다 뒷담화가 흐르는 공동체였다. 어쩜 내 이불 속에 들어와 사는 양 속속들이 아는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토닥여주는 말들에 진정 위로받았다. 살림 형편이나 사는 모양새가 달라도 도토리 키 재기하며 깔깔거렸던, 나의 노란 패밀리가 그립다. 돌이켜보면 노랑반은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란 말의 의미를 가르쳐준 어른들의 유치원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김라라 / 식품기업 R사 마케팅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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